매달 두 번씩 인근 자매원을 봉사방문 할 때마다, 담당 사회복지 선생님들과 나누는 첫 대화들이다. 처음으로 봉사를 실천하겠다고 나서기는 했으나, 그런 대화들조차도 내게는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요즘은 자녀들 학습과정으로 봉사라는 과목이 반 강제적으로 진행돼 주말에 가끔 학원에는 가지 않고 어디 가느냐고 우리 집 아이에게 물으면 흔히 들려오는 대답이 “아빠 나 봉사 간다”였고, 나 역시 “그래 잘 다녀와!” 하고 대답하곤 했으며,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봉사라는 단어의 이해 수준이었다.
또 건설업이 주업이었던 나는 매년 국가유공자를 위한 집수리나, 지자체가 선정한 무슨 목적의 집 고치기 사업을 한해에 2건 이내로, 직원 중 일부만 참여해 건물 내부 시설만을 개량하면서, 완성될 때 주관자와 시공자, 소유자가 모두 모여 거창한 사진 한 장 만들어 내는 것으로, 그나마 봉사하는 기업의 명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사회 환원의 자발적 참여에 대한 시대적 요구는 커져만 갔고,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나로써도 시대적 요구에 동참해야 하는지를 고민할 수 밖에 없었으며, 동참한다면 어떤 방식이어야 하는지를 또 다시 고민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러한 고민은 얼마가지 않아서, 이익의 자발적 분배만이 지역과 기업 그리고 이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개개인들을 동반 성장 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과 이것이 조직 구성원들의 공통된 바램이고, 목표라면, 기업이 롱런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을 갖출 수 있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이것이 봉사를 실천하는 발단의 계기가 돼 구체적인 봉사방안을 찾아 나서게 됐으며 실천적 참여로 이어지게 됐다.
먼저 정기적으로 임직원 전원이 참여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사내 봉사동호회를 만들어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했으며 신규 직원 채용 시에는 봉사를 실천할 수 있는지 여부를 추가로 검토했다.
그리고 매년 개개인들의 참여 횟수와 시간을 관리하고, 성과급 지급 시에 반영했으며 참여한 이들에게 성취감을 주기 위해 매회 진행되는 행사를 기록으로 보존하게 했다.
이렇게 시작은 반강제적이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업무를 벗어나 구성원 모두가 봉사에 참여하면서 인간적 소통의 시간이 생겼고, 단순했던 상하간의 관계에서 이해와 배려가 동반된 업무 공조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기록으로 남기게 했던 사진을 보면 시간이 흐를수록 처음에는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미소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봉사는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일상으로 변해갔다.
요즘 들어 자매원을 방문할 때 마다 건강한 정신과 육체로 온전하게 살고 있는 내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존재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됐고 이를 모르고 지냈던 지난날들을 반성하게 됐다. 어느덧 자매원 친구들은 내게 도움을 받는 존재가 아닌 내 인생의 선생님이라는 생각을 저버릴 수 없게 된 것이다.
‘혼자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갈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기업은 혼자서 빨리 가서는 안 되고, 함께 꾸준하게 가야 한다. 또 동반자가 선배든, 후배든 손을 잡고, 마음을 나누며, 공감대를 만들고, 즐겁게 나아간다면, 아무리 험한 길이라도 단결된 모습으로 헤쳐갈 수 있을 것이다.
기업을 운영하는 다양한 방법 중에서 봉사를 실천하는 것이 조직을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가족화하는 방법임을 알게 됐다. 시간이 많고, 금전적 여유가 많은 사람만이 행하는 봉사가 아닌, 열악한 환경 속에서 부족한 시간을 쪼개고, 없는 돈을 나눠서 실천하는 봉사를 통해 얻어지는 성과나 즐거움은 이 세상 어느 것보다 소중한 가치가 될 것이고, 단언하건데 그 가치는 100% 보상으로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자부한다.
연말에 우리 주변에도 도움을 필요로 하는 많은 이웃들이 있고, 그들은 큰 돈을 필요로 하지도 않고, 많은 사람과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작은 관심과 작은 도움만 있다면 세상을 큰 감동으로 물들일 수가 있는 것이다.
차가운 겨울 불우한 이웃에게 사랑과 나눔으로 다가서려는 마음과 작은 실천이 동반된다면 행복한 세상은 멀지 않았으리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