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흥1동 경로당 쌀 지원하는 채기웅 할아버지
집안가득 아주 담백한 보리차 향이 사람을 취하게 한다. 북구 신안동에 살고 있는 채기웅(82) 할아버지. 팔순이란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현관 앞에까지 나와 반겨주는 모습이 정정하다. 홀로 생활하는 집안은 젊은 사람들의 신혼집처럼 깨끗하고 아늑하다.
지난해 봄 중흥1동 경로당에 출입하면서부터 채 할아버지는 자신의 사비를 들여 경로당에 매월 쌀 20kg 1포씩을 지원해 주고 있다.
해준 것도, 한 것도 없는데 주위에서 고맙다고 할 때가 가장 쑥스럽다는 채 할아버지는 “이제는 함께 모여 식사를 하니 웃음꽃도 많이 피고 경로당 분위기가 훨씬 좋아졌다”며 “작은 행동으로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나이가 드니 사람들이 그리워집니다. 우리 때가 되면 서로 의지할 사람이 없어지기 때문에 서로 서로 도와가며 살아야 건강하니 오래 살수 있어요”라고 말하는 채 할아버지는 자신이 하는 일이 당연한 일인 것처럼 너무도 태연하다.
독일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온지 두달 만에 부인과 사별하고 13년을 홀로 보낸 탓인지 사람의 향기가 그립다는 채 할아버지. 그래서 집에 있을 때는 늘 TV를 켜놓고 생활하신단다.
오전에는 집안일을 하고 오후에 경로당을 가신다는 채 할아버지는 “경로당에 가면 친구들과 이야기도 할 수 있고 웃을 수 있어서 참 좋다”라며 노인들이 모여서 생활할 수 있는 곳으로 경로당이 제격이지만 시설이나 지원 면에서 부족한 것 같아 도움이 많이 필요하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사비를 들여 버스비 전액을 부담하고 경로당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약간의 회비를 걷어 지리산으로 단풍놀이를 가기도 했다. 올해도 똑같은 방법으로 경로당 식구들이 구례를 거쳐 하동으로, 섬진강으로, 남해대교로 꽃구경을 다녀왔단다.
“활동이 적은 노인들에게는 1년에 한번이라도 이런 기회가 주어지면 좋을 것 같다” 며 “다들 너무 좋아하고 즐거운 여행이 되서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계속 이러한 행사를 만들어 보고 싶다”고 말한다.
한때는 힘들고 어려운 생활 속에서 꿋꿋이 살아가는 소년소녀가장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는데 많은 부담이 될 것 같아 마음을 접었단다. 하지만 이제는 더 늦기 전에 꼭 한번 해보고 싶다는 채 할아버지는 “남을 돕는 것은 진정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야 비로소 봉사라고 할 수 있다”며 “젊었을 때부터 생각했던 것을 이제 와서 한다”는 게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하단다.